오늘도 잠은 제시간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내가 잠을 초대한 시간과 잠이 나에게 오기로 결심한 시간 사이에 작은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는 김치의 굴 만큼이나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 시간관념 없는 친구가 아침에는 가야 할 때를 모르고 계속 있을까 봐 그게 조금 걱정이었습니다.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몇 가지 있습니다. 특히나 약물이나 요란한 의식 없이 해볼 수 있는 해결책은 대부분 시도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머릿속에 가상의 울타리를 만들고 거기를 뛰어넘는 양을 세는 방법은 어떨까요? 예전에 1024마리까지 세어도 잠이 안 와서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한국어로 세면 효과가 별로 ..
매일같이 걸어가는 퇴근길을 걸을 때는 그 익숙함이 마음에 살짝 틈을 열어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고 주변의 풍경과 소리에 특별함이 없기에 걸음을 반쯤은 무의식의 영역에 맡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반자율보행 상태에 진입하게 만들고 얻은 머릿속의 여유에 다른 생각들을 반쯤 집어넣고 흘러가게 놔둡니다. 그 생각의 흐름이 잠시 멈추면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다시 이런저런 생각이 흘러가기 시작하면 그 흐름에서 의미 있는 생각들을 찾아다니다가 곧 음악 소리를 잊어버리게 됩니다.그렇게 만들어진 주관적인 세계의 흐름에서 주변에 스쳐가는 다른 사람들과 자동차들, 건물들, 불빛들은 대부분 무시됩니다. 무시당하지 않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요? 아마 타이밍 좋게 바뀌는 횡단보도의 빨간 신..
정말 가차 없는 상황이었어요. 새 프로젝트에 들어온 지 15일밖에 안 지났는데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는 거에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되물었죠. '제가 여기 리더인데 나가라구요?' 그래도 상황이 급해서 바꿔야 한대요. '그러면 여기 후배들은 누가 챙겨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죠?'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겠대요. '어..근데 저 지금 이 프로젝트 회의 들어가야되는데 가지 말까요?' 근데 또 그건 일단 들어가라고 하더라구요. 황망하게 지하철을 타고 회의를 하러 갔어요. 프로젝트가 막 시작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회의는 앞으로 프로젝트를 어떻게 잘 진행해볼까에 대한 회의였어요. 미래와 비전을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짰어요. 그러니까 예비부부들이 하는 그런 거요. 그래서 전 그 자리에서 예정된 이별에 대해서 ..